과자의유래

K-snack의 역사 part.1 : 역사에 언급된 과자의 기원.

유philip 2025. 1. 28. 21:56

모름지기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과거(역사)를 알지 못하면 죽은지식이다.

위대한 K-snack에 대해 알려면 변천사를 아는 것은 당연 한 것이다 .

 

그 변천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

 

Part 1. 한국 과자의 기원: 조선 시대 전통 간식에서 찾은 맛


"과자의 뿌리는 궁중 제사와 백성의 혀에서 시작됐다"

 

과자 없는 시대, 달콤함을 갈구한 조선 사람들

과자 없는 시대, 조선인들은 어떤 간식을 즐겼을까?
조선 시대 '간식'은 오늘날처럼 가볍게 즐기는 게 아니라, 제사와 명절, 특별한 날의 전유물이었다. 궁중과 양반 집안에서 만들어지던 전통 과자는 '사치품'으로 여겨졌지만, 백성들도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나름의 달콤함을 추구했다.

이제 조선의 전통 간식이 어떻게 오늘날의 과자로 재탄생했는지 그 여정을 따라가 보자.

 

1. 궁중의 제사 음식에서 탄생한 고급 간식

 

1) 약과 (藥果): 꿀과 참기름으로 빚은 달콤함

역사적 배경
조선 초기 『국조오례의』에 약과가 제사 음식으로 등장한다. 궁중에서는 참기름과 꿀, 밀가루로 반죽해 기름에 튀긴 뒤 계피가루를 뿌려 장식했는데, 이는 중국 송나라에서 전래된 '교자'와 유사한 기술이 적용됐다.

문화적 의미
약과는 조선 후기까지 양반 계층의 특권으로 남았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했을 때, 약과를 접한 외국인들이 "한국의 쿠키"라며 극찬한 기록도 있다.

재현 레시피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약과 제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밀가루에 술을 넣어 발효시킨 뒤 꿀물을 치고 참기름으로 튀기는 과정이 포함된다.

역사에 언급된 과자의 기원.
우리나라 전통적 한과의 모습

검색을 아무리 해보아도 현대식 약과의 모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나오지 않는다 .

아시는분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2) 유과 (油果): 쌀의 변신, 하늘 높이 튀어오르다

역사적 배경
『산림경제』(1715)에 유과 제조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찹쌀을 갈아 만든 반죽을 기름에 튀기면 부풀어 오르는 현상을 두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음식"이라 여겼다.

사회적 계층 차이
양반 집안에서는 꿀을 섞어 달콤하게, 서민들은 소금으로 간을 해 짭짤하게 먹었다. 특히 전라도 지방에서는 유과를 결혼 예물로 사용하는 풍습이 있었다.

과학적 원리
찹쌀의 아밀로펙틴 성분이 고온의 기름에서 팽창하며 바삭한 식감을 만들었다.

 

 

3) 다식 (茶食): ()와 함께 하는 예술

역사적 배경
다식은 고려 시대 불교 문화와 함께 발달했다. , 대추, 검은깨 등을 곱게 갈아 꿀에 반죽한 뒤 나무 틀에 눌러 문양을 새겼다. 『규합총서』(1809)에는 20여 종의 다식 레시피가 수록돼 있다.

문양의 비밀
(), () 같은 한자부터 꽃무늬까지, 틀에 새긴 문양은 소망을 상징했다. 특히 왕실에서는 봉황 문양 다식을 중국 사신에게 선물로 보냈다.

현대적 변주
경북 안동의 "다식 박물관"에서 전통 다식 제조 체험을 할 수 있다.

 

 

2. 백성의 간식: 자연에서 찾은 달콤함

 

1) : 조선의 설탕, 누구나 사랑한 달콤함


찹쌀을 발효시켜 만든 맥아당을 끓여 굳혔다. 『임원경제지』(1827)에는 "엿을 만드는 집이 서울에 100곳이 넘는다"는 기록이 있다.

계층을 초월한 인기 : 양반들은 엿에 잣·대추를 넣어 고급화했고, 서민들은 고구마·감자로 엿을 만들어 비용을 절감했다.

문화적 단면 : 엿장수가 "엿 먹어라!"를 외치며 다닌 건 조선 후기부터다. 엿을 사면 쌀 한 되를 주는 풍습이 있어 가난한 이들의 구휼 수단이 되기도 했다.

엿 먹어라!는 더 이상 욕이 아님을 공표한다. 

 

2) 산자 (山査): 동치미의 달콤한 변신

 

여러가지 찾아보다 신기 해서 올려 보았다.
『증보산림경제』(1766)에 산사열매를 꿀에 재어 만든 산자가 소개된다. 신맛과 단맛의 조화가 뛰어나 여름철 별미로 여겨졌다.

의학적 효능 : 한의학에서 산사는 소화를 돕는 약재로 사용됐다. 궁중에서는 산자차를 만들어 진상했다.

 

3. 개항기: 양 과자의 충격과 전통의 위기

 

1) 1876년 개항과 이양선(異樣船)의 달콤함

최초의 서양 과자
1884
년 인천 제물포에 들어온 영국 상인들이 비스킷·캔디를 선보였다. 고종은 이들을 "귀신의 음식"이라 부르며 경계했다.

일본의 영향
1910
년대 경성에 일본식 제과점(: 도쿄당)이 들어섰다. 밀가루·설탕을 사용한 카스텔라·비스켓이 유행했지만, 일반인은 맛보기 어려웠다.

 

2) 동양제과: 한국 근대 과자의 출발점

역사적 의미
1924
년 설립된 동양제과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 제과 회사다. 월남땅콩과자를 시작으로 사탕·비스킷을 생산했으나, 일제의 원료 통제로 고전했다.

 

해방 이후 여러 제과 기업이 일제의 잔재를 벗어 던지고 발전 하였으나, 특히 동양제과는 한국 과자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고 애국과자기업이라 불리우게 된다.

*동양제과 는 현재 오리온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4. 전통의 재해석: 오늘날의 전통 과자

 

1) 약과 프리츠: 궁중 음식의 스낵화

서울 종로의 한 전통 과자 가게에서 약과를 프렌치프라이 모양으로 잘라 젊은 층에게 어필했다.

2) 유과 크래커

CJ제일제당이 2020년 출시한 제품. 유과의 바삭함을 현대화해 포장지에 "조선의 스낵"이라는 슬로건을 달았다.

 

 

과자는 역사의 증인이다

 

조선 시대 궁중의 약과에서 오늘날의 유과 크래커까지, 한국 과자는 시대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다음 편에서는 1970년대,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국민 과자들의 혁명을 만나보자.

아울러 해외의 여러 과자들도 같이 소개할 예정이다.

 

"새우깡의 등장, 과자 대중화의 시작!"